2019년 8월 1일 목요일

【518 역사강의 – 5월 18일, 북한군 소요유도 요원들과 한국군 고정간첩 장성들】


북한은 월남이 패망한 이후에 남침을 하기 위해 광분했으며, 베트남 식 통일방식을 도입하기 위해 도시 게릴라 전 연구에 몰입을 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과 파리 평화협정을 맺고 미군과 북 베트남 군이 남 베트남에서 철수를 한 후, 정규군을 도시 게릴라로 위장해 남 베트남에 주둔을 하면서 일거에 남 베트남을 없애기 위해 카톨릭 신부들을 동원해 민족, 자주, 독립, 평화 란 단어를 앞세워 상당한 기간을 준비한 것 입니다. 
전면 남침을 하기 위해 남 베트남에서 주둔 중이던 병력이 발각되자 자체적으로 발생한 게릴라들이라고 발뺌을 하는 등 관련을 전면 부인을 하면서, 남 베트남 정부 곳곳에 간첩을 잠입시켜 기습 준비의 강도를 높여 나간 바가 있었습니다.

김일성은 북한 대남공작부서에 이 같은 베트남 통일성공사례를 연구를 시키고 훈련을 시켜 북한에 특수부대를 만들고 반복적으로 다시 훈련을 시켜서 박정희 전대통령의 유고로 한국에 권력공백이 발생하자 즉각 남한에 파견해 도시 게릴라 전을 준비시키면서 그 동안 남한에 파견했거나 포섭했던 고정간첩들을 총 동원한 것이 바로 518 광주사태였던 것 입니다.

국민들이나 많은 518 연구가들이 5월 18일 광주사태 발발이 우발적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으나, 사실은 광주에 파견된 북한군들은 북한에서 광주 모형물들을 만들어 놓고 사전에 많은 훈련들을 반복적으로 하고 숙달시켜 남파를 시켰고, 남한에 있는 고정간첩들 뿐만 아니라 종북세력을 규합시켜 준비했던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고, 조작한 518 수사기록을 근거로 왜곡된 발표를 하고 있는 것은 518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에 반하는 것일 뿐 입니다. 

우리가 뉴스에서 가끔 보는 북한군의 남침훈련 모습에서 남한의 지리가 적혀 있는 이정표 또는 청와대 모형물 들을 만들어 놓고 반복적으로 기습 침투 파괴를 하는 모습을 봤듯이, 광주에 남파된 북한군 600명도 광주의 모형물을 만들어 놓고, 작전을 해야 하는 곳의 모형물을 만들어 놓고 이정표를 만들어 놓고 반복적이고 되풀이 하는 훈련으로 작전대상 지형에 대해 감각적인 숙달을 했다는 것을 518 광주사태 당시 발생했던 각각의 사건을 분석해 본다면 누구나 다 확인이 가능 합니다. 

가령 5월18일 아침 전남대 정문 앞에서 공수부대에게 돌맹이를 던지는 작전 전개와 도심 목적지로 정확히 가서 사전에 교육받은 유언비어를 신속하게 유포하는 것, 아시아 자동차 대형 주차장에 600명이 끊기지 않은 길을 이용해 침입해 생면부지 장소에서 10초당 차 한대씩 출동시킨 점 등등 을 보면 북한군들은 사전에 충분히 훈련과 교육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5월 18일 광주사태가 전개 될 때 단 한 명의 북한군이 체포되지 않고, 북한군의 의도대로 광주시내가 불바다가 되기 시작하면서 피바다를 이룬 것은, 북한군과 고정간첩들의 철저한 사전 훈련으로 소요 유도 요원들과 그들의 도주와 작전을 엄호하는 요원들이 있었던 것이고, 이런 모든 정보를 북한군 지휘관인 이을설이 한국군 고정간첩 장성들을 활용해 진압군의 진압작전 까지 세워서 움직였기에 가능한 것이지 그냥 자연발생적으로 광주사태가 발생했다면 우왕좌왕 하면서 5월 18일 광주사태는 실패했을 것이고, 실제로 광주사태 이전 까지는 공수부대를 시위현장에 파견하는 것으로 시위가 종결되었기에 한국군 계엄사령부인 육군본부와 보안사령부는 단순 판단을 했었던 것 입니다. 

 한국군에서 최고로 훈련이 잘되어 있고, 진압능력이 뛰어났던 공수부대가 광주시내에서 북한군이 의도한 대로 시위에 가담했던 광주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진압을 자행해서, 민심을 이반하게 만든 것이 바로 북한군 도시 게릴라 전쟁의 기본적인 전략에 공수부대가 걸려 들었다는 것이 40년이 지난 지금에야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증거들을 제시하면서 확인을 할 수가 있는 것 입니다. 

공수부대의 강경진압을 유도하기 위해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씨를 말리러 왔다, 전남대 정문에서 대학생 100명이 죽었다, 여대생 유방을 도려냈다, 임산부 배를 갈랐다 등등의 유언비어을 살포한 것만 봐도 18일은 전라도 사람들의 감정을 극도로 자극을 시키고, 공수부대원들을 먼저 때려서 부상자들을 다량으로 만들어 악에 바치게 만들어 소요 유도 요원들의 함정에 빠지도록 한 것이며, 확실한 작전을 위해 31사단장이 직접 악에 바친 공수부대 장병을 앞에 나서서 작전명령서가 아닌 구두로 연설을 해 끝까지 쫒아 가 체포해 오고, 시위는 철저하게 진압하라고 분위기까지 띄운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소요가 시작되고 진압이 시작되자, 북한군과 한국군의 작전계획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북한군 사령관인 이을설이 도시 게릴라 전법대로 작전을 하므로써 진압군인 한국군은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하게 다루어 북한군의 의도대로 5월 18일 광주의 하루가 가게 된 것 입니다. 

2019년 8월 2일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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