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3일 토요일

【518 역사강의 – 518 광주사태 종료 후 북한의 공작도 조사를 해야 합니다.】


518 역사의 진실을 알려면,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의 광주사태만 연구해서는 안됩니다.

518 광주사태가 끝난 후 광주에서 518 남북한의 군사작전 지휘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북한은 전두환 신군부가 광주사태 당시 광주에서 광주시민들을 5,000명 정도 죽이고 수많은 사람들을 부상시켰다고 주장을 하면서 이런 사실들을 운동권 학생들을 통해서 소위 의식화 운동이란 미명으로 잔인하게 사람들을 살해한 영상들을 비디오로 제작해 비밀리에 대학가에서 많은 대학생들에게 방영을 해 왜곡된 사실을 각인을 시켰었습니다.

전두환 신군부가 광주시민들을 톱으로 썰어 죽이거나 도끼로 토막을 내는 장면들을 영상제작하고, 삐라를 만들어 살포를 하고, 공수부대가 광주시민들을 잔인하게 진압하는 장면들만 골라서 편집해 영상으로 제작해 만들었기에 이런 비디오를 본 사람들 치고 전두환 신군부에게 반감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는데, 다시 정권이 바뀌어 군부정권이 종식되었다고 선전하던 김영삼 정권 때 아무리 광주사태 사망자와 실종자 그리고 부상자 신고를 받아도 일백수십명의 사망자 뿐이 없었고, 다시 광주사태 주인공인 김대중 정권때 다시 신고를 받았어도 그 숫자는 변함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 광주사태와 관련해 자행된 북한의 선전선동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해명이 없었습니다.

왜 518 광주사태는 시작부터 끝까지 그리고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북한 관련설이 주장이 되고, 실제로 북한은 망월동 묘지를 참배를 하고, 북한에서 518 칭호를 수여를 하고 있고, 518 열사묘지가 있는 등 연관이 있는지에 대하여 국내 어떤 기관과 단체 그리고 학자들이 제대로 조사를 한 바가 없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518 광주사태 당시에는 연고대생 600명이 광주에 와서 광주시민들을 돕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했었고, 정상적인 시위나 반정부 데모 때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던 유언비언들이 난무했었지만, 그런 유언비어에 대한 해명이나 수사들은 전혀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기만 기다린 듯 유야무야 지나가 버리고 끝나버렸는데, 그런 유언비어들이 그렇게 끝날 성질의 유언비어가 아니었고, 그런 유어비어만 제대로 조사를 했어도 북한의 관련설 상당 부분은 증명이 되었을 것 입니다.

그런 게릴라 전쟁 식 유언비어를 조사도 하지 않고, 광주사태가 끝나고 북한이 5천명 사망설을 퍼트렸을 때도 나중에 사망자가 확인이 되었을 때 그리고 지금도 북한 주장의 암매장설을 근거로 유해발굴 작업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5천명 사망설에 대한 배후는 조사를 하지 않고 그냥 유야무야 넘어가고 있는 것은 절대로 옳지 않는 것임을 확인해 드리는 바 입니다.

지금이야 5천명 사망설을 믿는 국민들이 없지만, 그런 주장을 했던 배경과 사실들을 518광주사태 당시의 유언비어와 연관성을 조사를 해서 북한의 518 광주사태 관련을 증명을 해야 하는 것만이 정부의 할 일이 아닐까 하는데, 정부는 오히려 518 광주사태 언급을 하면 처벌을 하려고 법안까지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런 현실은 정말로 나라를 망치고 왜곡된 역사를 정설로 만들어 가려는 북한의 입장을 대신하는 행동 이라고 확신 합니다.

왜 명백한 증거들이 남아 있는 광주사태 5천명 사망설을 조사를 하지 않고 어영부영 끝낼려고 하는지에 대한 조사를 국민들 스스로가 해서 정부에 압박을 가해 518 재조사에 대한 결정을 끌어내야만 합니다.

그리고, 왜 518 광주사태 유공자를 정부가 아닌 지자체가 결정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조사도 해 봐야 하는 것인데, 이런 사실 하나 하나가 국민들이 정부를 불신하는 초석이 되어 정말로 국가를 위해서 헌신을 했던 사람들이 국가에 배신감을 느껴 다시는 국가를 위해서 헌신하지 않을 것을 맹세할까 두려워 지는 것 입니다.

518 진실 찾기 역사는 역사의 진실이 밝혀질 때 까지 과정 하나 하나를 살펴 봐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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