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30일 화요일

【518 역사강의 – 원정 시위꾼들은 어떻게 광주에서 먹을 것을 해결했나?】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생명체가 있는 물체는 무엇인가 섭취를 하지 않고서는 생명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들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졌던 광주사태에서 10일 동안 각종 시위에 참가한 수사기록에 기재된 특정한 세력들이 어디서 어떻게 누가 음식을 제공해서 먹고 지냈는지에 대한 조사는 커녕 언급조차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주목을 해야 합니다.

당시 광주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집에서 밥을 먹고 시위에 참가를 하거나 구경을 할 수가 있었다고 쳐도, 그들이 집에 밥을 먹으러 갔을 때 가족들이 나가지 말라고 극구 말렸을 것은 뻔한 것이고, 실제로 광주사태가 끝나고 계엄당국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거나 총에 맞아 죽거나 부상을 당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가난하고 못살던 어린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마지막까지 도청에서 저항을 했던 시민군들 상당수는 고교생, 재수생, 대학생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것을 봐도 정상적으로 광주에서 밥을 먹고 나갔다 들어오던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고 볼 수가 있는 것 입니다.

아무튼 수사기관이나 국회 청문회 그리고 각종 조사기관에서 조사를 할 때 이 부분 즉, 광주사태 당시 광주시내에서 주거를 하던 사람들이 아닌 원정을 오거나 아예 다른 지역에서 와서 상주를 하면서 시위를 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지냈는지에 대한 조사는 전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인간은 밥 한끼만 걸러도 힘을 쓰지 못하고 굶긴 것에 대하여 저항을 한다는 것을 상기해 본다면 이 부분에 대한 조사는 반드시 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20만 광주시민들이 시위에 참가를 했다고 하는데, 그 중 상당수는 광주시민들이 아니라 광주 외곽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상당수는 집으로 돌아 갔다가 안 오거나 다시 오거나 했을 것이고, 아예 상주를 했었는데 그 상주를 했던 부류들의 대표적인 집단이 바로 연고대생 600명과 고정간첩들 1,000여명이랍니다

성인남자들 일인당 백미 200그램 정도를 한끼로 섭취를 해야 하는데, 힘든 시위활동을 밤을 새워서 지속을 했으므로 하루 4끼를 먹었다고 가정을 하면, 1,600명X4X10X0.2=12,800킬로그램의 쌀이 소요되었고, 저 분량의 쌀을 운반하고 밥을 짓고 밥을 날라 주었던 인력을 관리하는 조직이 별도로 있었고, 막대한 비용을 지출을 했을 것인데, 주로 김밥을 많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광주사태 당시 급식에 대한 이야기는 21일 목포에서 광주로 진입하는 선발대가 광주 시민들에게 물을 얻어 먹고 밥을 얻어 먹는 사진이 등장하면서 시작되는데, 이런 이야기는 북한 특수군과 고정간첩들의 급식작전을 추진했던 조직을 은폐하기 위한 공작일 뿐 입니다.

또한, 비공식적으로 증언을 하는 518 당시 동원되었던 진압군인들에 의하면, 북한군들은 개인적으로 빳빳한 천원권을 한 다발씩 주머니에 소지했다고 하는데, 당시 택시 기본요금이 500원 정도 할 때 이니까 천원권 한 장이면 식당에서 식사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요즘 북한군이라고 소문이 난 광수를 찾아서 만들었다는 영화 김군 이야기도 광주천변에서 지냈던 1번 광수가 양아치였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관련자 집에서 밥을 같이 먹었다는데, 이 점을 우리는 주목을 해 봐야 하는 것인데, 누가 집으로 양아치를 초대해 자주 같이 밥을 먹을까요?

자주가 아니라 3시3끼를 공급을 했던 취식을 담당했던 조직의 일원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 보고 조사를 해야 하는 것임에도 영화를 만들어 미화를 하는 것이 작금의 대한민국의 현실 인 것 임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필자는 탈북자들의 518 참전설을 일축하고 있는데, 북한 사람들과 제3국에서 오래 인접해 지내 본 경험과 그들이 절대로 광주에서 어떻게 밥을 먹고 지냈는지에 대해 함구하는 것을 보면, 그들은 광주에 온 것이 아니라, 518 광주사태에서 북한군 이야기를 논쟁거리로 만들어 김대중의 광주사태 관여 사실을 숨기려는 공작으로 보기 때문 입니다.

인간을 먹지 않고 살수가 없으며, 먹지 않고 전쟁을 못하고 전투도 못합니다.

자국 땅에서 작전을 했던 공수부대도 몇 일간을 전투식량으로 버티거나 굶거나 했다는데, 적지로 원정을 온 북한군들이 굶지 않고 10일간 왕성하게 작전을 해서 광주를 점령했다는 것은 반드시 누군가 취식을 전담했던 조직을 관리 운영했다는 이야기가 성립된다는 것을 국민들은 알고 있어야 하고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2019년 7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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