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3일 수요일

【518, 무기탈취는 4시간 동안 38군데 무기고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제히 이루어 졌습니다.】


검찰은 1980년 5월 21일 오후 12시부터 4시까지 전라남도 17개 시도군에 소재한 38군데 무기고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제히 이루어 졌다고 발표 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군 600명이 아시아 자동차에서 탈취한 군용차량 370여대를 동일 아침 9시부터 10시까지 일제히 출발해 전라남도 17개 시도군에 소재한 38군데 무기고에 4시간에 걸쳐서 일제히 도착을 했다는 것 까지는 확실하게 발표를 한 것 입니다.

“38개 무기고에서 5,403정의 총기를, 화순광업소에서 8톤분량의 TNT, 뇌관, 도화선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탈취한 사실”을 특정 해서 언급을 한 것을 되짚어 본다면, 화순 광업소에서 8톤의 폭발물을 탈취해 북한군 트럭에 실었다는 것인데, 폭발물 특히 광업소에서 사용하는 폭발물은 광업소 종업원들만이 전문적으로 다룬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8톤의 분량이란 것을 인식한다면 북한군 트럭 운전병과 선탑자 등 몇 명 이서는 순식간에 절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화순 광업소에서는 북한군 트럭이 올 때까지 누군가 광업소 소유 폭발물을 전량 탈취해 기다렸다는 것이고, 트럭이 도착하자 마자 대기했던 인원들이 일제히 트럭에 폭발물을 싣고 트럭에 올라 타 광주로 진입했기에 광업소에서 대치가 있었다든지 마찰이 있었다든지 부상자들이 있었다든지 하는 소리가 없었던 것이고, 사진 자료에 의하면 폭발물을 다루는 2명이 방독면을 쓰고 폭발물 정돈을 하고 있는데, 바로 이들이 광업소 직원들이고 같이 있는 사람들이 북한군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들의 지시대로 도청에 광업소에서 갖고 온 다이나마이트 2천발을 설치를 한 것이 명백한 것 입니다.

이렇듯, 어느 무기고에서도 대치가 있었고, 교전이 있었거나 집단폭행이 있었거나 부상자가 있었거나 하는 보고서 또는 증언 또는 소문도 없었고, 21일 이후에 각지에 있는 무기고에 갔었던 사람들의 증언도 이미 열려 있었다고 하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무기고는 절대로 북한군이 습격을 한 것이 아닌 것은 명백한데, 이 점이 아주 중요한 518의 핵심 사항이랍니다.

아시아 자동차에서 군용차량을 탈취해 전라남도 17개 시도군에 있는 38개 무기고로 트럭을 몰고 간 600명은 북한군이 분명하고, 이들 600명이 아시아 자동차를 습격할 수 있도록 1급 군사기밀을 제공하고 경비를 포기하고, 20사단 지휘부를 역어서 보내준 것은 한국군 장성들이 틀림이 없는 상황에서, 이들 북한군에게 38개 무기고에 있는 무기를 고스란히 건네준 것이 누구냐는 것을 밝히는 것 자체가 518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갑자기 518 유공자 1,400명 가량을 늘려주고, 안기부 직원을 500여명 가량 강제 퇴직을 시키고 그 자리에 앉힌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연계해 확인을 해 본다면 답이 나오는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518 때 북한군에게 한국군 1급 기밀을 넘겨 준 것은 한국군 장성들이었고, 그 기밀을 이용해 아시아 자동차에서 군용트럭을 탈취해 무기고로 달려간 것은 북한군이었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그 트럭에 무기를 실어준 사람들이 누구인가만 밝히면 518의 진실은 드러나는 것인 데, 전라도 땅에서 벌어진 사건이고 전라도 사람 특히 무기고가 있었던 그 동네 사람들이 아니면 절대로 할 수가 없는 일이란 점만 봐도 무기고를 탈취한 사람들은 전라도 사람들이 명백하다는 것까지 오늘은 밝힙니다.

광주 대도시에서도 경상도 번호판을 달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차량에 불을 지르고 운전사와 탑승자를 집단 폭행해 중상을 입혔던 사람들인데, 시골 구석에서 경상도 사람들이나 미국 사람들 또는 다른 동네 사람들이 와서 무기고 문을 열고 총기를 막 쌓아 놓고 있었다면 그 동네 사람이 구경만 하고 있었을까요?  그 동네 사람들이니까 40년간 모두 같이 입을 닫고 있다는 것만 봐도 뻔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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