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4일 금요일

【518, 육사출신과 고정간첩 별들의 전쟁】


518은 6.25 전쟁보다는 규모와 피해는 적었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정신적으로 6.25전쟁보다 더 큰 피해를 끼치고 국가에 해악을 끼친 작지만 강한 전쟁이었습니다.

518은 같은 한국군 장성들이라고 해도 정부의 명령을 수행하는 장군들과 김일성의 지시를 받고 정부의 진압을 방해하고 진압군을 궤멸시키는 반란행위를 한 그런 별들간의 전쟁이기도 했습니다.

특검 수사기록을 참조한 많은 사람들이, 시위대가 20사단 지휘부 이동 군사기밀을 어떻게 알고 기습을 했겠나 일반시민들은 아닐거야 또는 아마도 북한군일거야 하지만, 실상은 20사단 광주 출동 준비 단계부터 보안사, 합참, 국방부, 육본, 전교사, 31사, 교통부 등에 있던 고정간첩들의 치열한 공작과 정보전쟁을 끝낸 결과란 것을 전혀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는 것 입니다.

아무리 날고 기는 북한군 특전대 300명이라고 해도, 만일 20사단 지휘부가 연대병력과 함께 기동을 했으면 절대로 기습을 하지 못하는데, 무장한 연대병력을 비무장의 북한 특전대는 상대가 안되기에, 먼저 20사단 지휘부를 20사단 연대병력에서 분리해 독립 기동하게 만들어 놓고, 사단지휘부의 기동로, 도착시간, 칸보이 차량 위치정보까지 파악해 북한군 사령관 이을설에게 정보를 제공했던 것 입니다.

이 정보를 확인한 이을설은 다음 날 오후 1시 공수부대를 전멸시키라는 김일성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서, 20일 밤 8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아시아 자동차 진입로 3곳을 절개절단 작업하고, 20사단 지휘부 통과로에 도로 일부 절개절단 작업과 중량물을 이용한 장애물 설치작업을 하는데, 차량 위치 정보에 따라서 약 100미터 구간에 각 차량의 위치와 길 형태에 따라서 정교하게 장애물을 설치하고, 환영인파를 가장한 고정간첩 1,000명을 동원 분산 배치해, 기습부대원 300명을 잠복시켜놓고, 20사단 지휘부 차량행렬이 도착하자 고정간첩들이 일사분란하게 박수로 유도를 했고, 지정된 위치에 차량들이 도착하자 잠복한 300명이 운전병과 선탑자만 있는 무방비 차량을 한대당25명 정도가 순간적으로 기습을 하면서 후미차량에 방화를 해 빼도 박도 못하게 했던 아주 정교하고 철저하게 짜여진 특수군사 작전이었던 것 입니다.

이런 북한군의 기습작전은 한국군 고정간첩 장성들이 사전 정보공작 이후 정보제공을 했고, 한국군 장성들이 1급 경비지역을 12시간씩이나 경비를 하지 않고 병력을 보내지 않았기에 가능했고, 동네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성공한 것이지, 주먹구구식이나 마구잡이 식으로는 절대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북한군의 20사단 지휘부 분리 기습은 김일성 사조직에 의해 장악된 44군데 무기고의 무기를 신속히 광주시내로 운반해 군중들을 무장을 시키기 위한 작전의 일환이었던 것인데, 그 이후 관련된 작전을 확인해 보면, 한국군의 군사반란이었음이 명백한 것을 40년간 속아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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