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5일 수요일

【518, 5월 18일 특전사 무자비한 진압 배경에 대하여】

공수부대를 수십배 병력으로 선제타격하는 북한군


518 광주사태에 있어서 북한군의 기본전략은 폭동을 야기해 군중들이 한국군 무기고를 습격해서 무장을 한 민중들이 무장폭동을 야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군은 518 광주사태를 야기하기 위해서 수많은 작전 계획을 수립 후 가장 타당한 방법을 선택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선택된 작전계획을 위해서 가동이 가능한 병력과 남한에 있는 모든 고정간첩들을 광주로 집결시켜 준비를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런 준비를 위해서 많은 자금을 투입했다는 것도 의미를 하는 것 입니다.

반면에 광주로 출동한 공수부대는 사전에 북한군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인지하지 못하고 바둑판이나 장기판을 소지하고 광주로 출동을 했을 정도였으니, 출발 단계의 준비상태 자체가 비교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무방비의 공수부대에게 유언비어 살포로 군중을 흥분상태로 만들어 놓고, 또 공수부대를 기습타격해 흥분상태로 만들고, 518 광주사태를 통해서 이적행위에 앞장섰던 광주 계엄관할 31시단장이 철저한 진압과 끝까지 쫒아 체포라는 진압 기본방침을 명령해 숫적인 열세와 정보의 열세에 있는 공수부대가 과격하게 진압을 하도록 북한군의 전략의도대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북한군 작전에 말려 강경진압을 하는 공수부대


1.  남북한 병력의 비교 


북한 특수부대 600명, 고정간첩 1,000명,                           공수부대 : 600명
김대중 사조직 1,400명

위에서 보듯이 북한군은 처음부터 철저한 준비를 해 놓고 특수전을 벌이는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한국 계엄군인 공수부대보다 월등한 병력을 준비하고 518 광주사태를 일으키는데, 이런 병력의 열세에다 곧 이어 이들 선전선동과 금품살포에 빠져든 주민들과 하층민들의 대규모 합세로 심각한 병력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됩니다.

2. 남북한 정보전력 비교 


한국군내 고정간첩과 북한군 통신전문가 상당수    공수부대는 공작을 받는 처지에 놓임
방송요원들 상당수

북한군은 광주에 주둔한 한국군내부에 장성급부터 정보요원과 보안요원들 까지 고정간첩으로 포섭해 놓아 한국 계엄군의 동향을 손바닥 보듯 하면서 소요사태를 야기 진행시키는 입장에 있었고, 반면에 공수부대는 자국땅에서 공수부대란 자긍심만 갖고 무방비 무대책으로 진압작전에 임함.

3. 북한군의 한국 공수부대 선제 타격


이러한 상황속에서 북한군은 전남대 정문에서 20배 정도의 우세한 병력을 동원해 경비중인 공수부대원 8명 정도를 돌맹이를 던져 중상을 입게 해놓고 전격적으로 도주를 해 매를 맞은 공수부대를 더 격분하게 만들어 놓고, 작전계획대로 31사단장이 헬기를 타고 공수부대 주둔지로 가서 매를 맞고 사기저하 된 공수부대에게 특전사가 매나 맞고 다닌다고 비아냥 거리면서 강경진압으로 철저하게 시위를 봉쇄하고, 시위자는 끝까지 쫒아가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려서 흥분한 공수부대원들을 더 흥분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4. 군중들을 더 흥분시키는 북한군들 


전남대 정문에서 공수부대를 선제타격하고 시내로 진출한 북한군 2제대은 곧 바로 시내에서 전남대 정문에서 공수부대가 학생 100명을 때려 죽였다고 소문을 퍼트리면서, 이미 북한군 1제대가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씨를 말리러 왔다, 여학생 유방을 잘랐다, 임산부 배를 갈라 태아를 패대기 쳤다 는 소문으로 흥분한 군중들을 시위로 끌어 들입니다.

이 시위대를 흥분시키기 위해 잘 훈련된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은 화염병으로 파출소를 불태우고 경찰을 공격해 군중들이 우세함을 인식하게 해 더 많은 군중을 끌어 들이고, 곧 이어 진압하러 나온 공수부대와 군중들이 맞 부딪히게 만들어 광주시내를 피바다로 만들고 불바다로 만들어 놓습니다.

5. 흥분된 시위대에 잔혹한 진압을 하는 공수부대 


보병장군에게 강력진압 명령을 하달 받은 공수부대원들은 그런 것들이 북한군의 작전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미리 짜 놓은 바둑판식 시위대 시위를 병력부족으로 진압을 하면서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또 선제타격 당한 복수심에 불타 명령을 받은대로 끝까지 쫒아 가 무자비한 구타를 가하게 되는데, 이를 목격한 광주 시민들은 이미 시내에 나돌던 유언비어를 그대로 믿게 되어 대항을 하게 대면서 피바다가 되는 참극을 맞게 되는 것 입니다.

북한군 지휘부는 이런 상황을 다 모니터링 하면서 한국군 고정간첩을 통해서 시위진압 상황을 파악해 시위확산 계획을 수립을 하고 시체 장사를 통해 더 많은 군중들을 동원할 계획에 착수하게 되는 것 입니다.

6. 40년이 지난 후 면밀한 분석을 통해 알게 된 사실들 


북한군은 사전에 충분한 작전계획을 세웠고, 충분한 병력을 동원했고, 한국군의 통신상황을 감청을 하거나 한국군내 고정간첩을 통해서 통신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해 작전에 활용을 하는 반면, 한국군 공수부대는 오히려 한국군 고정간첩의 공작에 말려 강경진압에 나셨다가 두고 두고 오명을 뒤집어 쓰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결국 전라도 광주에 주둔을 하면서 광주지역 계엄업무에 충실해야 할 전교사와 31사단은 무기고 경비를 하지 않고, 방산업체인 아시아 자동차 경비도 하지 않은 것이 확인되었기에 당연히 해안경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특히 아시아 자동차 피습 시에는 12시간 이상을 북한군의 전투야전공병 작업을 방치하고 추가 투입되는 20사단 지휘부가 북한군이 기습을 위해 대기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해 북한군의 기습을 도왔던 것도 확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확인 되었기에 18일 공수부대의 잔혹한 진압은 북한군의 전략에 말렸다는 것이 확인이 되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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