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14일 화요일

【518, 집단발포 명령의 의미와 명령자는 김일성】

5월 단체들은 지금까지 518 광주사태의 집단발포 주체를 공수부대라고 정의하고, 공수부대의 집단발포 명령자는 전두환이라고 설정해 놓고 국회까지 동원해 특별법을 만들어 짜 맞추려고 하고 있습니다.

518 광주사태의 주체가 공수부대가 아니기에 518 광주사태의 집단발포의 주체도 당연히 공수부대가 아니므로 518 광주사태 집단발포의 의미와 주체를 확인하려면 님을 향한 행진곡을 작곡한 윤이상과 죽음을 넘어 어쩌구 하는 518 사기 소설을 쓴 황석영이 왜 김일성을 만나서 이런 일을 했는가를 확인해 봐야 하고, 그런 확인을 한 다음에는 어떻게 전교사와 31사가 아시아 자동차를 북한군에 내주고 무기고를 내주었는지, 그 다음에 북한군은 그 무기로 무장을 하고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를 확인해 봐야만 합니다.

전교사와 31사단의 반란행위들은 따로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방송을 통해서 증거를 제시할 것이고, 북한군은 명백하게 전교사와 31시단의 도움으로 한국군의 무기고를 털어서 북한군,고정간첩, 동조하는 광주시민들 수천명이 무장을 하고 김일성이 교시로 내렸던 21일 오후 1시에 실탄없이 도청 앞에 포위되었던 공수부대를 향해 집단발포를 해서 공수부대원들을 집단학살 하려고 했던 것이 집단발포의 실체이며 집단학살의 실체였으며, 그 집단발포 명령자는 당연히 김일성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김일성의 지시가 독일간첩 힌츠페터의 광주 입성이 늦어지면서 무기를 털어서 광주로 오던 북한군과 조우하면서 사진촬영에 들어가게 되자 북한군들의 행군이 늦어져 김일성 교시의 운명적 집단발포가 늦어지게 되고, 도청에서 무기를 기다리던 북한군들은 김일성 교시 시간인 오후 1시가 되자 무기대신 차량을 동원해 집단 공격을 했던 것이 모든 기록과 증언으로 확인된 바 있고, 북한군들의 차량공격을 견디지 못한 신동국 중위의 자의적 발포로 북한군들이 일시적으로 후퇴를 해 김일성의 집단 발포 교시는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이 집단발포의 실질적 실체 입니다.

자신의 교시인 21일 오후 1시를 기념하기 위해 김일성은 윤이상과 황석영을 불러서 직접 만나 음악과 소설을 창작해 남조선에 배포하고 남한의 좌익들은 이를 518 교과서로 삼아서 배포하고 영화로 만들어 허구적 역사를 진실로 포장해서 교과서에 실어 초등학생들에게 가르치게 된 것 입니다.

집단발포를 외치고 사격명령자를 외치는 사람들은 고정간첩이거나 최소한 그 동조자들 이라는 것은 앞으로 방송으로 발표할 518 한국군의 반란 편에서 알려드릴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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