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7일 화요일

【518, 북한군 600명의 또 하나의 증거 27일 도청사수작전】

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도청수복작전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도청사수작전이 될 것 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을설에게 철수를 명령해서 5월 24일 중, 북한 특수군 600명은 모두 광주를 떠나 철수를 하고 고정간첩들에 의해 광주가 통치되게 되는데, 이런 허접한 고정간첩들은 정규전 개념이 북한 특수군과는 달라서 기껏해야 어린 청년들 157명에게 총을 쥐어 주고 자신들은 모조리 다 빠져 나가고, 군내 고정간첩들도 기껏해야 계엄군 출동 정보를 도청에 있는 고정간첩들에게 알려 주는 정도로 끝나고, 계엄군은 가능한 인명손실을 줄이는 것을 원칙으로 쉽게 도청을 점령 합니다.

만일 북한군 600명이 도청을 사수하고 광주를 사수했다면 그렇게 작은 인원이 희생이 되고, 쉽게 도청이 수복이 되었을까요?

최소한 북한군은 도청에 대량의 폭발물 설치를 하고, 외곽에 대량의 폭발물 설치를 하면서 어린이 노약자 부녀자 등을 인간 방패로 내세우고, 끝까지 저항을 하게 만들어 최소한 몇 만 명의 희생자를 냈을 가능성이 아주 농후 합니다.

그러나, 북한군 600명이 빠진 광주는 앙꼬없는 찐빵이 되어서, 불과 몇 시간 만에 최소한의 인명피해를 내고 인권을 무시한 고정간첩들에 의해 계엄군 총 앞으로 내몰린 10대와 20대 어린 청년들 약간의 희생만으로 막을 내립니다.

왜 도청수복 작전에는 신출귀몰한 연고대생 600명은 없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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