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3일 화요일

【518, 전투교육사령부, 31사단, 505보안대가 한국군 편이었다면】


위 제목은 광주 계엄사령부였던 전투교육사령부와 계엄부대인 31사단 그리고 합수부 소속의 505 보안부대가 518 광주사태 당시 한국 정부와 한국 계엄사령부에 등을 지고 북한의 편에서 군 작전을 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모략이나 비난이 아니라, 실제로 518 광주사태 때 벌어졌던 각종 대형사건을 분석해서 전술적으로 증명하고, 법원 증인 진술과 수사기록 그리고 참전자들이나 주민들의 증언을 종합해서 결론을 내린 것이라 100% 정확한 사실이고 역사로서 보존해야 할 가치가 너무나 커서 지속적으로 거론을 하는 것 입니다.

한 예로, 아시아 자동차를 괴한들이 침입을 하여 군용차량과 장갑차를 강탈해 갔을 때, 아시아 자동차에서 계엄사에 신고만 했어도, 또 신고를 했다고 쳤을 때, 신고를 받았던 계엄사 측에서 군 매뉴얼상에 있는 평범한 조치만 취했다면 괴한들 600명은 고스란히 체포를 하거나 모두 일망타진을 했을 수가 있습니다.

만일 1980년 5월 21일 오전 9시 ~ 10시 사이에 아시아 자동차 측에서 계엄사인 전투교육사령부에 신고만 했다고 쳐도, 이미 20일 밤 8시부터 아시아 자동차 진입로 4군데 중에서 3군데가 절개 절단이 되어서 통행금지가 된 상태였기 때문에, 남아 있는 길 즉, 괴한들이 아시아 자동차로 진입한 그 길만 전차나 장갑차 그리고 5분 대기조만 먼저 보냈어도 괴한들은 차량을 탈취해서 전라남도 17개 시군읍에 소재한 무기고로 갈수가 없었음은 물론, 고스란히 체포되거나 전투가 벌어졌얼 것인데, 당시 괴한들의 무장은 M16 4정, 권종 1정과 M60 2정 뿐이었기에 변변하게 한국군에게 대항을 못하고 다 죽거나 자살을 하거나 체포되거나 했을 것은 명백한 것 입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괴한들 600명은 모두 다 아시아 자동차에서 생산한 군용차량을 운전해서 아시아 자동차를 다 빠져 나갔다는 것임을 볼 때, 아시아 자동차 측에서 신고를 하지 않았다거나 또는 신고를 했다면 전투 교육 사령부에서 그냥 묵인을 하고 괴한들의 작전을 도와 주고 있었다는 결론을 얻을 수가 있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설사 시간이 부족하고 병력이 부족했다고 쳐도. 괴한들이 전라남도 17개 시군읍에 있는 무기고에서 무기를 차량에 싣고 광주로 들어오는 시각은 그로부터 4시간이 지난 시각이었기에 얼마든지 광주 진입로를 봉쇄 할 수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하게 알 수가 있기 때문 입니다.

계엄하에서, 전시에 준하는 사태 하에서 수백명의 괴한들이 방산업체를 습격해서 군용차량을 끌고 관할 계엄사 예하 무기고를 향해서 갔다는데 보고만 있었고, 길을 터주거나 막지 않거나 했다는 것은 광주 관할 계엄사는 정부와 계엄사령부의 지침을 어기고 북한의 편에서 계엄업무를 집행하고 있었다는 것임을 확인 할 수가 있는 것 입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초기에 진압군에게 시위를 철저하게 진압하고 끝까지 시위대를 추적해 체포하라고 지시를 해 사태를 고의적으로 악화시켰고, 극비 정보인 20사단 이동 정보를 북한군 사령관 이을설에게 전달 해주고, 계엄업무 지원부대인 20사단 지휘부를 북한군의 장애물 함정으로 유인해 주었으며, 방산업체인 아시아 자동차 경비를 하지 않고 북한군의 진입로 절개절단 작업, 장애물 설치작업, 차량출동준비 작업을 암암리에 해 주었고, 관할 무기고 경비를 하지 않고 비워 놓았고, 비무장인 진압군에게 허위정보를 제공해 무장한 북한군과 폭도들 속으로 진군하게 하여 많은 손실을 초래하고 장군과 병사가 포로가 되게 하고 장비를 내주게 하였고, 급기야 철수하라고 지시를 내려놓은 진압군을 매복하라고 지시한 교도대를 시켜 공격하게 해 1개 대대를 궤멸시키고 법정에서 허위증언을 한 사실을 본다면 광주지역 계엄사인 전교사, 31사, 505 보안대는 북한 편에서 작전을 하고 한국 정부와 계엄사령부에 반란을 했던 것이 명백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한가지 한가지 구체적인 사례와 직전을 폭로해 국민들이 정확한 역사의식을 갖도록 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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